마을신문
2012.04.02 11:07:31 조회1402
마을에는 삶의 흔적이 있다.
마을역사라고나 할까.
1875년에 우리 5대조 할아버지는 이곳으로 오셨다.
6대조 할아버지를 모시고.
지금 집자리에 집을 지으시고, 은행나무를 심으셨다.
두그루 중 한그루는 새마을사업과 함께 베어져 없어졌다.
옛집은 1956년(?)에 헐고, 새집이 지어졌다.
새집은 5간 초가집.
집을 지을 때, 부산했던 마당 풍경이 기억난다.
회정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시고, 유복이 둥글테를 굴리고 다녔다.
먹줄 튕기면서 연필을 귀에 꽂은 목수 아저씨 모습도......
마을의 역사를 기록해야한다.
아버님은 며칠전에 의식을 잃으셨다.
가물가물한 기억 때문에 옛일을 자꾸 혼동하신다.
다행히, 고모할머니가 아버지와 동갑이시다.
고모할머니는 영보로 시집을 가셨지만, 오래전부터 우리 동네로 오셨다.
1928년 무진생인 아버지와 고모할머니.
이 두분이 우리 마을을 가장 잘 아신다.
방죽안할아버지도 계신다.
그러나, 말씀이 없으시다.
지금도 경운기를 끄는 82세 청년(?).
산정대부님도 계시지만, 등이 굽은 대부님은 지금도 두엄짐을 내는 큰 일꾼이지만, 얘기는 없으시다.
마을일은 내 기억 속에도 있다.
잊고 있었던 것들이 걷다보면 생각난다.
엊그제는 쓰레기를 줍다, 할아버지 쇠똥 주워오신 것을 기억해냈다.
수십년 전의 일이 오늘과 겹치는 것은 머리가 아니고 몸이었다.
태뫼 할아버지 산소에 자주 간다.
할아버지께 여쭙는다.
물론 대답은 없다.
할머니께는 여쭙지 못한다.
할머니 말씀은 뻔하다.
'아가, 힘든디 뭘라고 그러냐. 어서 들어가 쉬어라.'
할머니 말씀일 것이다.
난, 할머니 조동 버릇이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내 말은 무조건이었다.
등등의 얘기들이 생각킨다.
오늘, 마을신문을 만들겠노라고 '나주체험마을포럼'에 글을 올렸다.
마을별로 글을 한꼭지 이상 올려달라고.
그러면, 편집해서 만들어 보겠다고.
객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주체험마을은 경쟁보다는 협력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신문, 방송, 공동사업 등으로.
우리 마을도 체험마을이지만,
형편없다.
사람이 많이 찾는 한우직판장이 있다는 것 외에는.
사실 한우직판은 장사다.
장사가 마을에 보탬이 되는 것은 마을돈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않다.
돈벌이가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번 돈을 나누는 것도 의지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여튼, 주민들이 관심갖고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을 주민들 참여를 위해서라도 마을신문은 필요하다.
마을 역사를 찾아 기록하고, 주민들 참여를 위해서 신문을 만들자.
힘닿는데로 하다보면 길이 보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