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뫼길 답사 후기
2011.05.18 17:46:02 조회1586
체험 행사를 책임지라는 명을 받고 이궁리저궁리에 빠졌다.
먼저 산책로를 점검하기로 했다.
어려서 늘 다녔던 산이지만 숲이 우거져 옛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무릎밑에서 놀던 도토리나무를 헤치고 다니던 시절과는 달리 숲이 빽빽해서 하늘을 가린다.
마을에서는 태뫼에 산책로를 냈다.
체험관에서 출발이다.
황토벽돌로 지은 체험관은 농축산물 판매를 통해 우리 마을 재정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목적체험관과 작업실, 저장고를 지나 태뫼를 향한다.
가는 길에 멋있는 소나무가 줄지어 선 옛동산이 보인다.
지금은 사슴목장이 들어섰다.
그 아래 문평댁이 혼자서 깨를 심고 있다.
산책로 입구를 알리는 팻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가파르다.
가팔랐자 86미터 정상인데 '하늘아래 뫼'지......
깔딱고개를 넘는다.
이정도 오르면 숨이 찬다.
제법 오르는 길이 계속되기에, 숨이 깔딱댄다.
깔딱고개를 올라서니 태뫼정상이다.
이곳이 과거에는 전망이 좋았다.
광주 무등산, 나주 금성산, 영산포 개산, 영암 월출산과 신북 호산, 그리고 목포로 흐르는 영산강과 무안 승달산으로 뻗어가는 산 줄기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노닥거리던 너럭바위는 없어지고 대신 휴게공간이 들어섰다.
키가 훌쩍 커버린 소나무와 참나무가 전망을 가린다.
마을쪽은 완전 나무가 전망을 가렸다.
나무 일부를 쳐야만 마을 경관을 볼 수 있겠다.
목포 쪽은 좀 보인다.
그러나 이곳도 나무가지를 쳐야할 듯.
아래로 트인 길을 따라 약간 내려가니, 전망이 된다.
넓게 펼쳐진 노년기 지형이 한눈에 잡힌다.
멀리 보이는 곳이 목포 쪽이다.
정상에서 무제봉을 향한다.
무제봉 가는 길은 여유롭고 차분하다.
왼편으로는 두릅나무밭이다.
재배하는 두릅이 때를 넘겼다.
우리 부부가 일전에 채집한 두릅은 이 밭에서였다.
무제봉과 동네, 두릅나무밭으로 나뉘는 사거리를 만난다.
여기에 안내판이 필요하렸다.
두릅밭은 개인이 경작하는 밭이니 출입을 금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길을 이용해서 태뫼를 넘었으니, 임대자의 경작 기간이 끝나면 이 길도 열어야 옳다.
동네로 향하는 길에는 '진씨아저씨 의자'가 있다.
진씨 아저씨는 오랫동안 병고와 싸우고 있다.
힘든 몸으로 날마다 산책을 하시는데, 이곳에 앉아 쉬신다.
이곳 전망이 그만이다.
마을로 내려가려면 여기서 진씨아저씨 의자를 지나 마을길을 찾으면 된다.
무제봉에 이른다.
이곳은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마을민이 모두 힘을 합해 비오기를 빌었던 봉우리.
1960년대 가뭄이 심하던 어느 해 기억이 지금도 있다.
놀랍게도 다음날 비가 왔다.
지금은 나무들만 무성하다.
이 무제봉은 한때 봉화터로도 쓰였다.
무제봉을 도는데 엉겅퀴등 이름모를 꽃들이 반긴다.
무제봉을 돌아 태뫼길을 내려올라치면 보이는 것이 시설농들의 하얀물결이다.
축산농가와 특수작물농가가 섞여있는 그곳이 땅뫼산.
여기는 '태뫼', 저기는 '땅뫼'
격이 다르다.
해발 높이야 별 차이 없지만......
삼거리길을 만난다.
두릅밭을 통해 간다면 여기서 만나게 된다.
무내미를 향하는 오른편길을 간다.
오른편으로 펼쳐지는 곳이 영산포, 나주 그리고 혁신도시가 들어올 곳 등이 훤히 보인다.
우리 마을 입지는 광주, 나주, 혁신도시, 목포가 모두 1시간 이내 거리이다.
무내미로 향한다.
무내미란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넘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내미부터는 길이 별로다.
이곳부터는 수로를 따라 간다.
개인적으로는 중간에 정취있는 새로운 길이 있어야한다고 생각 중이다.
수로를 타고 오는데, 동네 동생이 트랙터를 몰고 온다.
수박농사 몇년에 쫄딱했다는 중한 동생!
여전히 농삿일에 바쁘다.
태뫼를 바라본다.
우리가 넘어다니던 길은 지금은 두릅밭으로 끊어졌다.
4년후에는 다시 열리라.
아래 보이는 가운데길이 그 길이다.
그 길로 넘어오면 '천수아저씨 샘'이 있다.
항상 물이 끊기지 않는 샘.
천수 아저씨는 여기서 늘 앉아 계셨다.
수로를 타지 않고 태뫼를 도는 길을 새로 낸다면 아래 사진에서 왼쪽으로 난길을 타고 큰골로 이르는 방법이다.
지금은 소삽한 길이지만, 그 길이 운치가 더 있지 싶다.
큰골에 이르렀다.
연산아제가 깨밭에서 아주머니 두분과 풀을 멘다.
큰골에서 잠시 신북고모네 과수원에 들렸다.
한참 적과작업을 하고 있는 중.
고모부는 제초작업 중이었다.
칠십이면 작은 나이가 아닌데, 제초기계를 밀면서 열심이다.
잠시 환담하고 돌아섰다.
내가 와선 든든하다는 얘기를 만날 때마다 하는 착한 고모부다.
큰골에서 할미당거리를 거쳐 마을로 오는 길이 옛길이다.
지금은 오리농장이 막고 있다.
멀리보이는 오리농장 오른쪽 돌아가는 곳이 할미당거리였다.
어렸을 적에 그곳에 돌을 놓고 지나다녔다.
큰골에서 봉춘이네 샘이 있는 곳을 향하다보면 '맹도리 시함'이 있었다.
얼마나 추웠던지 더운 여름에도 붕알이 꽁꽁 얼어붙던 샘이다.
3분을 견디면 잘 견딘다는 샘.
땀띠를 없애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즐겨 사용했던 샘이었다.
방죽안 할아버지 내외께서 깨를 심고 있다.
팔십이 넘은 할아버지다.
"농사 지을꺼여?"
농사 짓겠다고 했다.
"어려워, 식량이나 해~~~"
생각코 하신 말씀이다.
여기저기 우리 논을 대는데, 내 논을 나는 모른다.
참~ 한심하다.
애쓰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봉춘이네 샘'이 있는 출발점으로 향한다.
봉춘이네 샘은 없어졌다.
마을에서 동산만 넘으면 있었던 시함은 그리 대접받은 시함은 아니었다.
하루(야구 비슷한 공놀이)하면서 놀다가 공이 빠지기도 했던 곳이고, 목욕하기에는 물이 별로였다.
없어진 샘 자리는 축축해 보인다.
가까이서 자세히 살폈더니, 역시다.
물이 고여있다.
샘자리라 물이 많은거다.
아까 '맹도리시함' 자리도 그랬다.
다시 체험관으로 향한다.
우리 마을에서 체험관은 도농교류의 중심지다.
체험 프로그램을 잘 마련해야 우리 마을의 활로를 열 수 있으렸다.
지금도 연구소 이무성 선생님을 기다리면서 이 글을 쓴다.
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을 얻으려고......
1983년에 조성된 동각.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넘길 수 있게 만들었던 동각이다.
이제 마을민만이 아니다.
시골을 찾는 도시민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최근 차양을 덧댄 동각이다.
오늘 다녀온 길(총시간 75분) : 체험관->(15분)태뫼정상->(5분)태뫼사거리->(7분)무제봉->(5분)삼거리길->(10분)무내미->(15분)큰골->(15분)봉춘이네샘->(3분)체험관